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맨체스터 시티 FC (문단 편집) === 프리미어 리그 이후, 탁신의 인수 === 1992-93 시즌부터 1부 리그가 [[프리미어 리그|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로 새롭게 개편되면서 맨유가 프리미어 리그 최다 우승을 거두며 세계적인 강호이자 인기 팀이 될 때, 맨시티는 쇠락을 거듭했다. 그 사이 팀을 방만하게 운영해 온 피터 스웨일스는 1994년에 사임했고, 팀 레전드인 프랜시스 리가 회장으로 부임했다. 그럼에도 팀의 경영은 갈수록 더 악화되어 1995-96 시즌 챔피언십 리그(2부), 더 나아가 1997-98 시즌 리그 1, 즉 3부 리그까지 강등되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리그 강호는 아니지만, 이것은 '''역대 유럽 클럽 국제 대회 우승팀 역사상 처음(UEFA 컵 위너스 컵 우승)으로 3부 리그 강등 기록[* 2004-05 시즌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 경력을 가진 [[노팅엄 포레스트]]가 리그 1로 강등하기 전까지 유일한 기록이었다. 2019년에는 UEFA컵 우승경력의 [[입스위치 타운]]이 3부 리그로 떨어지며 또 하나의 사례가 추가되었다.]이란 불명예'''였다. 그나마 1시즌 만인 1998-99 시즌 도중에 데이비드 번스타인 회장과 [[조 로일]] 감독이 각각 취임하여 버뮤다 출신의 무명 공격수 숀 고터의 활약에 힘입어 1999년에 다시 2부 리그로 승격했고[* 과정이 굉장히 드라마틱했다. 3부 리그 3위로 승격 플레이오프를 치렀는데, 맨시티는 6위였던 [[위건 애슬레틱 FC|위건 애슬레틱]]을 제압하고 결승에서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프레스턴 노스 엔드]]를 제압한 [[질링엄 FC]]와 상대해야 했다. 당시 질링엄 감독은 [[토니 퓰리스]]. 맨시티는 질링엄을 상대로 후반 36분과 후반 41분에 실점하며 승격은 물건너가는 듯했는데, 추가 시간에만 2골을 득점하며 승부를 극적으로 연장으로 끌고 갔고, 결국 [[승부차기]]에서 3-1 승리를 거두며 2부 리그 승격에 성공했다.] 1999-00 시즌에 2부 리그 플레이오프에서 [[블랙번 로버스 FC|블랙번 로버스]]를 꺾고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하였으나, 한 시즌 만에 18위로 아쉽게 강등당했다. 그 사이 덴마크 같은 유럽 축구 변방과 제3세계 등지에서 젊은 선수들을 영입해 전력 보강에 주력한 후, 2001-02 시즌에 새로 부임한 [[케빈 키건]]의 지휘 하에 리그 1위를 차지해 프리미어 리그로 단숨에 올라왔다. 승격 첫 시즌인 2002-03 시즌에 상대 팀에 따라 기복이 심하고 수비가 약해 54점 실점을 기록했으나, 9위로 마감하여 다크 호스 노릇을 했다. 해당 시즌 우승팀이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매치업에서 1승 1무로 우위를 점하기도 했다. 2003년에는 정든 메인 로드를 떠나 새 구장인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으로 둥지를 틀었다. 구장 이전 후 수비를 보강하기 위해 아스날의 명수문장 [[데이비드 시먼]]을 영입하고, 공격수로는 [[니콜라 아넬카]], 풋볼 리그 디비전 1으로 막 강등당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웨스트햄 유나이티드]]로부터 미드필더 트레버 싱클레어를 사들여 전력 안정을 꾀하고자 했으나, 뜻대로 안 되어 리그 성적은 연이어 2004-05 시즌 빼고 16위, 15위, 14위를 각각 기록했고, 하위 팀으로서 강등을 겨우 모면하는 신세인 팀이었다. 2006-07 시즌에는 리그 컵에서 3부 리그 팀 [[체스터필드 FC|체스터필드]]에게 패하고, 리그 내내 홈에서 10골만을 넣고, 리그 후반기인 2007년 1월 1일 에버튼전에서 골 넣고 나선 '''홈에서 단 한 골도 못 넣는''' 미친 대활약을 벌이면서[* 마지막 홈경기 2경기에서 모두 PK를 얻고도 득점에 실패했다. 홈 최종전이 라이벌 맨유전이었는데 여기서 0-1로 패하면서 맨유는 리그 우승 초읽기에 들어갔고 다음날 첼시의 무승부로 우승에 성공했다.] 강등을 겨우 모면하고, 이때 감독 [[스튜어트 피어스]]는 맨시티의 흑역사가 되어 쫓겨난다.[* 참고로 이 당시 피어스는 잉글랜드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겸임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소속 팀에 집중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셌다. 물론 맨시티에서 경질된 이후에도 청소년 대표팀 자리는 유지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몇년간 키워온 선수들을 이끌고 [[2012 런던 올림픽]]에 나섰지만 8강에서 한국에게 져 탈락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었다.] 그러다가 2007년에는 1년 전 쿠데타로 [[태국]]에서 쫓겨난 전 타이 총리 [[탁신 친나왓]]이 자신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구단을 매입한다. 사실 맨시티 서포터들이나 영국 반응은 무덤덤했다. 탁신은 2004년에 [[리버풀 FC]]를 인수하려다 실패했었고 이 와중에 자신이 리버풀 팬이란 언론 홍보를 하는 바람에 맨시티 팬들에게 "리버풀에서 거절하자 꿩 대신 닭이라고 맨시티를 샀다"라며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그래도 돈 좀 들여서 과거 잉글랜드 국대를 지휘한 바 있는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과 프리미어 리그에서 통할 만한 몇몇 선수들을 영입했다. [[일라누]]와 [[마르틴 페트로프]]가 대표적이다. 그 외의 영입으로는 롤란도 비앙키, [[발레리 보지노프]], [[베드란 촐루카]], 지오반니, [[젤손 페르난지스]], 하비에르 가리도가 있다. 2007-08 시즌 맨시티는 초반 프리미어 리그 3연승을 거두며 선두에 오르기도 했고, 맨유에 홈, 어웨이 모두 승리를 거두는 등[* 2008년 2월 10일에 올드 트래포드에서 [[뮌헨 비행기 참사|뮌헨 참사]] 50주년을 추모하는 기념식이 있었는데 맨시티가 맨유를 2:1로 꺾으며 맨유 팬들을 더더욱 슬픔에 잠기게 만들었다.] 좋은 성적을 내며 리그 2/3 정도 치른 시점까지 챔피언스 리그를 사정권에 두었다. 첼시 원정 0:6 패배, 마지막 경기인 미들즈브러 원정에서 1:8 대패라는 옥에 티도 있었지만 [[리처드 던]]과 [[마이카 리차즈]]의 센터백 라인은 맨시티의 호성적에 큰 뒷받침이 되었다. 그리고 이적생인 엘라누와 마르틴 페트로프도 적응기 없이 맹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대부분의 돌풍 팀들이 그렇듯이 맨유 원정 승리 후 리그 12경기에서 3승 2무 7패에 그치며 최종 성적 9위로 리그를 마쳤다. 9위로 리그를 마쳤지만 그해 페어 플레이 팀으로 선정되며 1차 예선부터 UEFA 컵에 출전할 수 있는 진출권을 따내는 성과를 올렸다. 영국 언론 포포투에서는 중위권 성적인 9위도 잘한 것이라고 평을 내렸다. 하지만 탁신은 하위 팀을 중위권 성적까지 올려주고 5년 만에 [[UEFA 유로파 리그|UEFA 컵]]에 진출시킨 감독을 경질하고[* 이때 맨시티 팬들은 에릭손을 지킨다며 Save Our Sven, 줄여서 SOS 캠페인을 벌이지만 실패한다.][* 에릭손 감독의 후임으로 [[마크 휴즈]]가 맨시티의 감독이 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맨유]] 레전드가 맨시티의 감독이 되어 논란이 있었다.], [[호나우지뉴]]를 영입하겠다고 떠들면서 정작 팀의 주전 수비수 [[리처드 던]]의 주급을 올려주지 못해 잃을 뻔할정도로 한심하고 답이 없는 운용을 거듭하다가 태국에 있던 그의 자금이 법으로 막혀버리자 구단을 냅다 알 파힘을 통해 만수르에게 팔아 버렸다. 탁신은 덕분에 2배 이상 이득을 보았고 탁신의 후광을 입고 맨시티에 입단했던 태국 선수 3명은 2008년 10월에 전원 방출되었다. 이 당시의 맨체스터 시티에 대해 한국에서는 [[쑨지하이]]가 활약한 것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쑨지하이는 팀이 2부 소속이었던 2001-02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 이적했고, 다음 시즌 팀이 1부로 승격한 뒤 탁신이 구단주로 취임했던 2007-08 시즌 이전까지 계속 주전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탁신이 구단주가 된 이후 선수 보강이 이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잃어 결국 2008년 [[셰필드 유나이티드 FC|셰필드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또한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 최고의 악동 중 한 명인 [[조이 바튼]]이 여러 가지 사건 사고를 일으키면서 한국 언론에서 종종 이름이 언급되기도 했고,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한 [[마르크비비앙 푀]]의 소속 팀으로 알려져 있었다.[* 임대 신분으로 맨체스터 시티에 합류했었다.] 또 [[페테르 슈마이켈]]과 [[데이비드 시먼]] 등 특급 수문장들도 이곳에서 선수 말년을 보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